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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눈밤] 자리의 의미

  검은 장갑 밖으로 빼어낸 손이 유달리 희다고 생각했다. 장갑을 낀 이유가 시린 온도를 감추기 위함 이였는지 가까이 다가가면 온기하나 없이 유리조각처럼 서늘한 기운이 흘렀다. 늘 맞닿았던 손들은 자신의 위치를 느끼게 해줬는데 그 아이는 마디도 굵지 않고 곧은 모양새가 장식이라는 이름하에 무언가를 얹으면 오히려 그 모습을 훼손시킬것만 같았다. 외투를 접고 머리를 넘기는 일상적인 일을 그림 그리듯이 움직이던 손이 멈추더니 곧 제 이름이 들렸다. 모란설은 의문이 생길 때 마다 이름에 물음을 붙이곤 했는데 그 덕에 제 이름의 어감이 딱딱하지 않음을 오랜만에 상기했다. 자리를 잡고 음료를 한 모금 마신 뒤 손에 어른대는 시선을 잡아 눈에 맞춘 채 대화를 이어갔다. 

 

여름에는 늘 그렇게 잠들어? 

- 응, 이번에는 보고싶어서 조금 일찍 일어났어요.

일찍이라기엔 정말 ... 오랜 잠이였는데 

 

  속에 담아두었던 감정이 조금씩 배어나왔다. 말해주지 않은 서운함이 올랐다가 그런 사이는 아니니까 하는 자기위로로 계속 숨겨왔던 속내였다. 

 

- 여름의 정원은 어때요? 수국을 좋아하는데 오래 보지 못하다보니 늘 아쉬어.

조용하고 평온하지. 

 

  네가 잠든 정원을 혼자 거닐 때면 모두 그대로 인데 네 방에 들어가면 장맛비에 잠기는 기분이였다고 말하면 넌 어떻게 답할까. 빨대를 손에 쥔 채로 얼음을 달가닥 소리내며 음료를 휘젓다가 웃어보이는 네게 답하며 생각했다. 조금 생각나더라. 정원에서 시간을 자주 같이 보냈잖아. 말이 끝남과 동시에 네 특유의 웃음이 진해졌다. 만족? ...반가움? 이어서 눈요정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얻어 들은것을 늘어놨고 모란은 그에 맞장구 치다가 덧붙이며 설명해줬다. 아이스크림을 아무리 먹어도 배앓이는 없다며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얼굴에는 멈칫하며 의아해하자 그게 얼마나 행운인지 아냐며 당당히 말하는것에 결국 크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눈요정에 대해 이야기하다 도깨비의 특징에 대해서도 말해줘야할것같아 그들 대다수가 장난이 많고 욕심이 많으니 주의하라 경고해줬다. 모란은 내 앞의 도깨비는 그런 적이 없다며 믿을 수 없다는 뉘앙스로 속삭였다. 

 

- 한 번씩 당신의 또다른 모습이 어떨지 궁금해요. 

나? 

- 이따금씩 생각하면 늘 눈길이 가니까 어쩐지 사랑을 많이 받았을거 같아서.

...그렇지도 않지만 

 

웃음이 멎었다가 다시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 어떤데요?

...

 

  별것 아닌 이야기인데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엉키며 입을 때기가 어려웠다. 어떤 말을 뱉어야 할 지 고르다 못해 삼키는 말만 늘어난다. 눈앞에 흰 선이 생기는듯 싶어 고개를 올리자 유려한 손이 제 앞의 디저트를 가져가고 있었다. 너무 단가. 하는 일상적인 혼잣말을 하는 널 보며 자연스럽게 입이 열렸다. 

  반지. 붉은색 옥 가락지. ..흠이 많아. 작고. 어,  더듬더듬 얼빠진 사람처럼 이어가는 말에 네가 손을 쭉 펼쳐내더니 이쯤이면 될까 하며 손가락 하나를 가르켰다. 눈앞에 둔 손과 자신의 본체 모습을 상상하고서 부조화스러운 모습에 고개를 내저으니 들어가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인연인 사람들은 붉은 실이 엮여져 있다는 이야기와 인간들은 인연의 증표로 반지를 사용한다며 웃음지었다. 가볍게 나온 이야기에 숨이 막혔다. 너는 늘 왜 그렇게 말해. 우리 아무 사이 아니잖아.  주먹에 쥐어 진 채 이리저리 흔들리는 기분이였다. 이러저러한 생각을 숨긴체 " 글쎄, 잘 모르겠다. " 어영부영 넘기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을 뿐. 그 애가 가르킨 손가락은 왼손 약지였다. 인연과 연인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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